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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선원전 현판 환수: 역사적 배경과 의미

by mynote6285 2025.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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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적도보》에 실린 경복궁 선원전

1. 경복궁 선원전의 역사적 의미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은 조선 왕실에서 역대 국왕들의 어진(御眞, 초상화)을 봉안하던 중요한 건물이었다. 조선 왕들은 선대 군주에 대한 예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에 따라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필요했다.

선원전의 기원은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기 위해 1398년(태조 7년) 에 창덕궁에 최초의 선원전이 설치되었으며, 이후 경복궁에도 별도의 선원전이 건립 되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방화로 경복궁과 함께 소실 되었다 .

이후 조선 후기 숙종 대(1695년)에는 창덕궁 춘휘전(春輝殿)을 개조하여 새로운 선원전으로 삼고, 숙종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이후 영조, 정조, 순조 등 조선의 왕들은 선원전을 확장하고 보강하면서 자신의 어진을 추가로 봉안했다. 선원전은 단순한 보관 공간이 아니라, 왕실의 정통성과 위엄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으며, 선왕들의 통치 이념을 계승하는 중요한 장소로 기능했다 .


2. 선원전의 변화와 일제강점기 훼손


선원전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보수와 확장을 거듭했지만, 1867년(고종 4년) 대대적인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원래 위치에 다시 건립 되었다. 이 시기의 선원전은 정면 7칸, 신실(神室) 5칸으로 구성된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었으며, 정조 이후 역대 국왕들의 어진을 모시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

그러나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를 거치며, 국운이 기울어지면서 선원전의 관리도 점차 소홀해졌다. 특히 일제강점기(1910~1945년)에는 일본이 경복궁을 체계적으로 훼손하는 과정에서 선원전을 포함한 여러 주요 건축물들을 철거 했다.

1922년, 일제는 경복궁 내 대부분의 전각을 철거하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기 위해 궁궐 터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선원전도 해체되었고, 주요 유물들이 흩어지거나 유출되었다. 선원전의 현판 역시 이 시기에 해외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


3. 선원전 현판의 환수 과정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현판

2024년, 경복궁 선원전의 현판이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는 오랜 시간 해외로 유출되었던 문화재가 국내로 돌아오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3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등에 따르면 유산청은 경복궁 선원전 현판이 2023년 12월 26일 일본 후쿠오카 고미술 경매장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입수해 거액을 주고 긴급 매입했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유물 반환을 넘어,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현판은 2030년 제자리를 찾는다. 국가유산청은 경복궁 완전 복원 계획에 따라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종시로 이전하면, 2030년 선원전 복원을 추진한다. 선원전 복원이 완료되면 이번에 환수된 현판이 상단에 걸릴 예정이다.


4. 선원전 현판 환수의 의의

(1) 조선 왕실 문화유산의 복원


경복궁 선원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조선 왕실의 역사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 이었다. 현판의 환수는 이 중요한 문화유산의 일부를 되찾는 과정이며, 조선 왕실의 문화적 정체성을 복원하는 의미를 가진다.

(2)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 문제의 해결


경복궁 선원전의 철거와 유물 유출은 일제의 조직적인 조선 문화재 수탈 정책의 결과 였다. 선원전 현판의 환수는 이러한 역사적 부당함을 바로잡고, 한국의 문화적 자존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3) 국제 문화재 반환 운동의 성과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 운동 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이 약탈된 문화재를 원 소유국에 돌려주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한국도 적극적으로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 반환을 추진하고 있다.

경복궁 선원전 현판의 환수는 한국이 국제 문화재 반환 운동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로, 앞으로의 추가적인 반환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5. 결론


경복궁 선원전 현판의 환수는 단순한 문화재 반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조선 왕실의 중요한 역사적 유물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문화적·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지닌다. 또한 이는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의 부당함을 바로잡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문화재 반환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 이다.

앞으로도 한국은 지속적으로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하며, 이번 선원전 현판의 귀환이 문화재 보호와 복원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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