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무심코 들른 서점에서였다. 진열대에 놓인 책 한 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스토너》, 단출하고 고요한 표지. 책등에 적힌 문장 하나—“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가 마음을 건드렸다.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이 문장은 소설 《스토너》가 전하는 깊은 울림을 정확히 집약한다. 화려한 성공이나 비범한 사건이 아닌, 한 사람의 조용하고 고독한 인생을 다룬 이 소설은 오히려 그 담담함 덕분에 더 강렬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 그리고 그 속의 쓸쓸함과 작지만 진실된 투쟁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다.
《스토너》는 1965년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수십 년이 흐른 뒤 유럽을 중심으로 뒤늦게 재조명되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영국 ‘워터스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가장 놀라운 부활”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후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 이제야 이 작품이 사랑받기 시작했을까?
그 이유는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삶에 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농업을 배우기 위해 진학한 스토너는 우연히 수강한 영문학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만나고, 인생의 진로를 바꾼다. 그는 문학에 매료되어 교수가 되고, 조용한 연구와 교육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가족과의 관계, 직장 내 정치, 사랑의 실패, 질병 등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스토너는 단 한 번도 요란하지 않다. 그는 묵묵히, 그러나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살아낸다.
이러한 스토너의 태도는 지금 우리 사회, 이른바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치열한 세상 속에서 ‘성공’이라는 잣대는 점점 무겁고 단정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조용한 실패, 슬픔, 그리고 소박한 저항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스토너》는 문학적으로도 큰 완성도를 자랑한다. 존 윌리엄스는 간결하면서도 밀도 있는 문체로 스토너의 내면과 세상을 그려낸다. 극적인 장면 없이도 인물의 감정과 삶의 흐름이 뚜렷하게 전달되며, 이는 독자에게 더 깊은 몰입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위대한 소설이라기보다 완벽한 소설”이라는 뉴욕 타임스의 찬사가 과하지 않게 느껴진다.
배우 톰 행크스는 이 소설을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의 강점이다. 이 책은 평범한 삶에도 깊은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일깨운다. 수많은 이들이 자기 삶을 돌아보며 “나는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자문할 때, 《스토너》는 조용히 말한다. “당신은 이미, 당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다”고.
결국, 스토너는 우리가 자주 외면했던 진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고독 속에서도 꿋꿋이 걸어가는 삶,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존재. 그게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다정한 위로이자 작은 응원이 된다.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